“그 날에 내가 응답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나는 하늘에 응답ㅎ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올리브 기름에 응답하고, 이 먹거리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할 것이다.”
아주 예쁜 사진 한 장을 보았습니다. 좀 흐릿한 색감이 환상적인데, 푸른 숲에 붉은 꽃이 한가득 피어 있었지요. 사실 그것은 불타는 아마존 사진이었습니다. 참 끔찍한 일입니다. 지금은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라고 하지요? 상승하는 지구의 온도를 제어할 수 있는 시간이 20년도 채 남지 않았답니다. 이러한 기후위기는 누가 초래한 것일까요? 무론 에너지를 많이 쓰는 나라들 책임이 가장 크지만 이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기후위기는 우리의 밥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마존 밀림은 왜 불타는 걸까요? 거기에 옥수수밭을 만든답니다. 그 옥수수는 누가 먹을까요? 주로 대규모 공장식 목장의 소들이 먹지요. 그 소는 또 우리가 먹습니다. 그렇게 밥상에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아마존 밀림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밥상에서 먹거리의 영성을 보았습니다. 밥상의 회복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밥상에 있는 먹거리들은 그저 단순한 영양소가 아닙니다. 그 먹거리 속에는 하늘이 있고 땅이 있습니다. 햇빛과 바람과 흙과 물이 있고, 재잘거리는 새 소리와 벌레의 자취가 있지요. 거기 하나님이 계시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있습니다. 우리 밥상의 먹거리에서 하나님과 하늘과 땅과 이웃이 있습니다. 우리 밥상의 먹거리에서 하나님과 하늘과 땅과 이웃이, 온 생명이 함께 소통합니다. 밥상은 하늘을 향한 감사와, 땅을 향한 위로와, 이웃을 향한 나눔의 마당입니다. 예배의 장소입니다. 밥상은 거룩합니다.
구원 없는 삶에서 먹거리는 무엇일까요? 탐욕이 전리품이지요. 내 배를 채우고 내 곳간을 차꼬로 단단히 가두어야 할 내 소유입니다. 오롯이 내 소유가 되기 위하여 그것들을 바깥과 철저히 차단됩니다. 거기에는 하늘도, 땅도, 이웃도 없습니다. 피조물의 부르짖음도 들리지 않습ㄴ다. 여기서 로루하마와 로암미가 나옵니다. 긍휼함도 없고, 내 백성도 없습니다.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탐하면 탐할수록 기갈과 갈증만 더해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풍요만이 행복이요 생명인 줄 알고 집착하지만, 그것들이 쌓여 갈수록 삶은 더 황폐해지고 기진해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가 먹는 것이 허망한 탐욕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마시는 것이 원한이기 때문입니다. 탐욕과 원한의 산해진미로 어떻게 생명을 풍요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과 땅과 사람을 보지 못하는 눈먼 욕심을 하나님의 영성이라 말하지 마십시오. 피조물의 부르짖음을 듣지 못하는 환각을 거룩한 영성이라 착각하지 마십시오.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벌레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이 보이지 않습니까? 피조물이 부르짖는 신음에서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이 들리지 않습니까?
주님, 이 대림절에 우리를 ‘빈 들’로 이끌어주소서. 우리의 밥상이 하늘과 땅과 먹거리가 서로 응답하며, 주님의 은총을 찬미하고 함께 나누는 생명의 밥상이 되게 하소서. 에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