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영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쓰는 말인데,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뜻이랍니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동원하고,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꿈을 이루어낸다는 것이지요. 꿈을 이루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젊은이,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꿈이 아파트 당첨 이랍니다. 이거 참, 누구는 영혼을 팔아 젊음을 샀다는데, 우리 젊은이들은 영혼을 팔아서라도 아파트를 사는 게 꿈이랍니다. 그래서 결혼도 미루고, 결혼해도 아기는 낳지 앟는답니다. 정말 슬프고 아픈 얘기이지요. 젊은 세대가 아기를 낳지 않는 것이 좌절하여 희망을 포기한 것이라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사야는 희망의 예언자입니다. 나라가 망해 갈 때부터 패망이후 바빌론 포로 시대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시리아 왕이 쳐들어오면서 유다의 멸망은 시작되었지요. 암담한 어둠의 날이 닥쳐온 것입니다. 이제 머지않아 예루살렘고 성전은 무너지고, 성읍이 황폐하여 주민들이 사라지고, 기름진 논밭도 황무지가 될 것입니다. 이런 혼란의 시기에 예언자는 백성들에게 무슨 말로 위로하고 희망을 줄 수 있을까요?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 이사야가 선포한 희망의 예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환란의 때에 아기가 태어났다면, 그것은 참 대책 없이 황망한 일 아닙니까? 어른도 제 한 몸 견뎌내기 버겨운 시기에 핏덩이 아기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는 말로만 아니라 실제로 아기를 낳았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 ‘마헬살랄 하스바스’라는 말씀을 받습니다. ‘노략이 올 것’일느 뜻이지요. 그는 아내를 가깡이해서 아들을 낳고, 아기 이름을 ‘마헬살랄 하스바스’라고 짓습니다. 아기에게 너무 섬뜩한 이름 아닙니까? 이사야는 이 아기가 살아내야 할 세상이 얼마나 험악할지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과 절망의 때에 아기를 낳았습니다. 이 아기는 무엇일까요? 이사야가 말하는 희망이란 도대체 어떤 희망이란 말입니까?
“주님께서 비록 야곱의 집에서 얼굴을 돌리셔도, 나는 주님을 기다리겠다. 나는 주님을 의지하겠다. 내가 여기에 있고,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 나와 아이들은, 시온산에 계시는 만군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보여 주시는, 살아 있는 징표와 예후다.”(사 8:17~18) 그렇습니다. 그에게 아기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요 미래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실지라도, 그래도 하나님을 기다리고 하나님만 의지하겠답니다. 배수진을 치고 맨손으로 버티고 서 장수처럼 참 결연하고 비장한 희망 아닙니까? 우리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아니 함께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