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야곱에게 물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 대답하였다. “야곱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과도 겨루어 이겼고, 사람과도 결어 이겼으니 이제 네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어댑니다. 뼈대 있는 집안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 아이의 손이 항아리에 들어가서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가보로 내려오는 귀한 청자 항아리입니다. 기름을 발라 보고 힘껏 잡아당겨 보아도 속수무책입니다. 이 귀한 청자라도 삼대독자를 잡을 수는 없지요. 할 수 없이 항아리를 깨뜨렸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꼭 움켜쥔 아이의 고사리 손을 펴니 유리구슬 한 개가 또르르 굴러떨어졌습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 쌍둥이 형의 발꿈치를 움켜쥐고 나왔습니다. 잔꾀를 부리고 아버지까지 속여 장자권도 얻어냈습니다. 삼촌의 집에서 고된 머슴살이를 버텨내면서 두 아내와 자식을 얻고 양떼도 늘렸지요. 마침내 그는 네 명의 아내, 열한 명의 아들, 수많은 남녀 종과 엄청난 재산을 움켜쥐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형의 발꿈치를 움켜쥐고 나온 조막손으로 그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었으니, 이게 성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그에게 하나님의 사람이 물었습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무슨 물음일까요? 네가 악착같이 움켜쥔 그것이 무엇이냐? 네가 이룬 것은 또 무엇이냐? 아니, 그 소유들을 그렇게 움켜쥐고 있는 너는 누구냐? 그런 물음이 아닐까요?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는 이 물음은 하나님의 물음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또한 인간 자신의 물음이기도 합니다. 내가 도대체 누구냐는 근원적인 존재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 누구도 이 물음에 대신 대답해줄 수 없습니다. 야곱의 아내들도, 그의 자식들도, 그의 많은 소유도 그의 이름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들은 얍복강 저편에 있고, 그는 강 건너 이 편에 홀로 있습니다.
“저의 이름은 야곱입니다.” 야곱의 대답입니다. 그가 움켜잡은 것은 결국 냄새나는 발꿈치에 불과할 뿐임을 폭로하는, 그의 삶의 허망한 속내를 드러내는 이름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움켜쥔 모든 소유를 강 건너에 두고, 홀로 강을 건너서 빈손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했지요. 하나님의 사람과 밤새도록 씨름하다가 엉덩이뼈를 다쳤습니다. 힘의 근원인 그 중심이 무너진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하나님의 사람을 붙잡은 손을 놓지 않습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새벽 동이 터오자, 하나님의 사람이 말합니다.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여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새 이름입니다. 이제 그는 남의 발꿈치를 움켜쥐는(=겨루고)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잡고(=겨루고) 살아가는, 아니, 하나님께서 든든히 붙잡아주시는 ‘이스라엘’입니다. 남의 발뒤꿈치를 움켜쥔 손을 놓지 않고서는 은혜로운 하나님의 섭리를 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손을 비워야 하나님의 손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