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태어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아브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름을 받고 난 후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먼저 ‘아브람’에서 ‘아브’는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람’은 높다는 뜻이지요. 그렇게 보면 ‘아브람’은 ‘높은 아버지’ 라는 뜻입니다. 높은 사람, 지엄하신 분, 어르신, 그런 아버지입니다. 옛 세계에서 아버지는 한 가족, 한 가문의 주인입니다. 가족 중에 가장 높은 사람, 가부장이지요. 이 가족 공동체를 확장하면 사회가 되고, 더 넓히면 나라가 됩니다. 왕은 백성의 아버지라고 불리지요. 이렇게 보면 ‘아브람’은 그냥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높은 권위와 권력을 가진 지배자의 이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브람’이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름을 바꾸셨을까요? 그 이유가 17장 5절에 나옵니다.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만들었으니 이제부터는 너의 이름이 아브람이 아니고 아브라함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만들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 민족의 아버지입니다. 이스라엘 한 민족만이 아니라 여러 민족이요, 모든 민족입니다. 여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에 그 어떤 민족주의와 배타주의가 있습니까? 여기에 그 무슨 순혈주의가 있나요? 아니 없습니다. 세상에 아브라함을 선조로 받드는 유대교만큼 배타적인 종교가 없지요. 또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믿는 기독교만큼 배타적인 신앙도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은 애초부터 배타주의와는 상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유일 민족의 조상이 아닙니다. 실제로도 여러 민족의 조상입니다.
그런데 모든 민족의 아버지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서로 다른 여러 민족을 지배하려면 높이 올라가야 하지 않을까요? 강력한 힘과 지고한 권위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신의 반열에까지 올라간 황제라야 모든 민족의 아버지가 되는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높은 아버지라는 이름, ‘아브람’ 이라는 이름이 제격 아닐까요? 그런데 아니랍니다. ‘아브라함’ 이라는 이름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여러 민족의 아버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힘이 아니라 ‘긍휼함’, 곧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라함’이라는 말이 바로 ‘긍휼하다’는 뜻이지요. 마치 생명을 품어 지키는 어머니의 태 같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긍휼하신 분을 한 분 알고 있지요? 바로 하나님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긍휼하신 아버지십니다. 아브라함은 긍휼하신 하나님을 닮은 사람의 이름입니다. 우리는 오늘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시는 분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