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이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나는 무식하지만 한 가지만은 똑똑히 안다. 내 땅을 남에게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홍범도 장군의 말입니다. 지난 광복절에 카자흐스탄에서 장군의 유해를 봉환하여 국립현충원에 안장했지요. 홍범도 장군 하면 일본군을 대파한 ‘봉오동 전투’를 떠올리게 됩니다. 장군은 낯선 땅을 떠돌며 말년에는 극장 수위로 일하며 고생하다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해방 78년, 봉오동 전투 101년 만에 뒤늦게 자기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는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군이 있었습니다. 봉오동 전투에 참여한 독립군이 2,000명이나 되었다지요? 우리는 이 땅을 지켜온 수많은 독립군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수천명의 독립군이 쓸 물자와 비용을 댄 후원자들입니다. 특히 남편과 아들을 내보낸 부녀자들이 있었지요. 밤낮 바느질로 옷을 짓고 주먹밥을 만들어 툇마루에 내놓으면 독립군들은 한밤중에 그걸 가져갔습니다.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이 바로 독립군 보급 부대였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아내는 일본군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하면서도 입을 열지 않다가, 결국 혀를 깨물고 옥사했습니다. 장군에게 투항 권고문을 쓰라는 일본군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망해가는 나라를 바로잡으려는 영웅호걸이 아낙네가 이같이 어리석은 글을 쓴다고 굴복하겠는가?” 그저 ‘이 씨’라고 알려진 그녀의 이름은 ‘이옥구’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입니다. 곧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이 나신 날입니다. 그런데 조금 뒤집어보면 성탄절은 ‘예수님을 낳은 날’입니다. 마리아가 낳았습니다. 아기는 제 맘대로 태어나는게 아닙니다. 어머니가 낳아주어야 태어나는 것입니다. 생일은 ‘천상천하 유아독존’한 날이 아니라 어머니가 자기 몸을 찢고 피를 흘리며 낳은 날 아닙니까? 성탄절에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이름은, 바로 예수님을 낳은 어머니의 이름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아주 흔한 여성의 이름입니다. 복음서에는 마리아가 여럿 등장합니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도 같은 이름입니다. 미리암은 강물에서 모세를 지켜냈지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저 평범한 여자였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땅 갈릴리의 나사렛에 살았던 것만 보아도 그리 특별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비천하다고(눅 1:48) 말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자신에게 주신 소명을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눅 1;38) 며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자기 아들 때문에 칼이 심장을 찌르는 고통을 당하는(눅 2:35)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갑니다. 그렇게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고 길렀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날이, 아니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을 날이 다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