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저녁부터 다음날 월요일 저녁까지 함께 공부하며 우정을 나누는 목사님들과 함께 울산, 경주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울산에서 반가운 집사님, 권사님을 만나 뵙고 매우 귀한 환대를 경험하고 돌아왔습니다. 같이 동행했던 목사님중에 교우 가정에 장례가 나서(여덞개 교회 목사님이 함께 움직이다보니 장례가 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예정보다 일찍 귀경하였는데, 그날 차량을 제공하고 친히 운전해주셨던 목사님 덕분에 빠르게,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누가 운전대를 잡느냐? 하는 것이 속도감과 안정감에 굉장히 큰 차이를 가져옵니다. 그날 저는 태어나서 처음 국산 승합차량도 이 정도 속도까지 낼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상상하는 그 이상의 속도로 승합차량을 운전하는데, 더군다나 말로 다할 수 없는 안정감까지....엄청 스피드 업을 했는데 안정감을 느꼈다는 것이 좀 믿기지 않지만 속도계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서울로 날아오는줄 모를 정도였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운전을 하느냐에 따라 같은 차량을 운전하면서 불안하기도 편안하기도 합니다. 신뢰받는다는 것은 그래서 참 귀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안정감을 주는, 신뢰할만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 봅니다.
시편 86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라 찬양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거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시인이 말하듯 가난하고 궁핍한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이 귀 기울여주시는 경험이 있었기에 하나님을 인자와 진실히 풍성하시고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분으로 고백하는 것이겠지요. 이 하나님이 내 인생의 운전대를 붙잡고 계십니다. 그래서 인생이 어느 지점을 지나든, 어느 속도로 질주를 하든 정한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을 믿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붙드시는 사람은 안정감이 있고, 요동하지 않습니다. 조금 겁나는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그래서 조금은 겁이 나더라도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시는 하나님의 등을 볼 때 다시금 안정감과 여유를 얻습니다. 하나님이 오늘도 나를 인도하십니다. 인생의 핸들을 내가 아닌 하나님께 맡겨보세요. 다윗과 같이 평안과 여유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