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유일한 급소는 마음이다.” 고린도후서 4장 말씀에 대한 강해서를 읽으면서 제 눈길을 강하게 잡아끄는 문장이었습니다.
“인간의 유일한 급소는 마음이다. 특별히 종교와 관련된 일에서 인간은 너무나 쉽게 지적으로 교만해지기 때문이다.”.....
고린도지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혼미케 전하는 이들은 바울 사도에 비해 종교적으로 매우 우월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입니다. 자신들은 바울이 가지고 있지 않은 ‘추천서’를 가지고 있고, 바울이 강조하지도 지키지도 않고 있는(=물론 그들의 생각입니다만) 모세율법과 조상들의 유전을 지금껏 간직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종교적인 자만심, 예수님이 그토록 경계하신 바리새주의적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통 유대인으로써 율법과 조상들의 유전(=전통)을 정성스럽게 보전하고 있는 것에서 좀더 성숙해지고 겸손해졌으면 좋을텐데, 도리어 영적으로 자만하게 되는 것을 보면 분명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는 마음을 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게 됩니다. 저와같은 사람에게는 마음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약점이 투성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커다란 약점이 바로 제 마음이라는 것에 고개를 연거푸 끄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잘하고 있으면 잘하는대로 남과 비교해서 교만한 마음이 자리하고 어렵고 실패할 때에는 곧바로 낙심하고 무너지기도 잘하는....
우리의 유일한 약점인 마음을 어떻하면 보전하며 지켜낼 수 있을까요? 사도가 말하듯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라는 이 보내는 우리 마음이란느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질그릇에 담겨 있습니다<고후 4:7>. 그런데 보잘 것 없는 질그릇이라도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라는 보배를<4절> 담고 있다면 그 질그릇의 가치는 달라집니다. 세상 가장 귀한 보배가 담긴 질그릇이 됩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보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질그릇과같은 마음에 담겨 그 질그릇을 보호하십니다, 질그릇에 세상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를 더하십니다. 연약한 나의 마음, 세상 가장 약한 그곳이 하나님의 보배인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담는 질그릇이 됩니다. 질긋에 담겨진 보배로 말미암아 보호를 받습니다. 그럼으로 이 질그릇과같은 연약한 마음에 오늘도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님이라는 보배를 담아내세요.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생명이 역사하는 마음이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