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간의 주말 장례일정을 마치고 목양실로 돌아와 상념에 잠깁니다.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존귀한 것이라 하시는데(시 116:15), 그 장례의 예식이 존엄하고 경건한 시간이 되길 3일간의 장례를 집례하며 기도했습니다.
장례식장에서의 발인 시간과 육체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승화원에서의 하관의 순서에서 집례자인 목사는 장례행렬의 가장 앞서서 고인의 마지막 발걸음을 인도합니다. 너무 가까이도 그리고 너무 멀리도 아닌 딱 한발자국 정도 앞에서서 고인의 마지막을 인도합니다. 살아서는 함께 예배하며 함께 기도했던 성도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목회자로서 저의 소임은 우리 성도들보다 딱 한걸음 앞에서 걷는 것임을 배웁니다. 너무 멀지도 않게, 너무 가깝지도 않게 딱 한걸음 앞에서 교우들을 인도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 ㄴ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4:14~16>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을 낳았다고 하기에는 저는 아직 많이(?) 젊습니다. 교회의 청년들에게는 이 표현이 어울리는 목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장년 교우들에게는 아직 세월이 더 많이 필요한 듯 느껴집니다. 대신에 한걸음 앞에서 여러분과 함께 걸어가는 동행이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딱 한 걸음 앞서 걸으며 가야 할 올바른 길, 안전한 길로 인도하며 때로는 곁에 서서 같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 길이 피곤치 않고, 지루하지 않게 하는 역할이 제격이라 여겨집니다. 저는 이러한 목회의 소명을 지식을 따라 행하지 않고 덕을 세우는 사랑을 따라 행하려 합니다(고전 8:1). 지식은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같이 믿음의 줄을 잡고 우리의 생명의 길 되신 예수님을 따라 사랑으로 덕을 세우며 동행이 되어주세요. 안전하고 행복한 믿음의 여정을 누리게 될 것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