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마다 산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산에 가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좋아는 하지만 이전까지는 혼자 갈 용기가 안나서 가지를 못했는데(=가봤자 동네 일자산이나 아차산 정도) 동행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피곤하고 힘들어도 그 산엘 올라갑니다. 동행이 가져다주는 힘입니다, 에너지입니다. 은혜 베풀어주시길 40일을 두 번이나 금식하며 기도하는 모세는 베풀어주실 은혜로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과 함께 동행해 주시기만을 간절히 바라지 않습니까(출 33:16)...동행이 제일 큰 은혜임을 알기 때문이지요.
산을 오고 가며 배우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산은 위로 올라갈수록, 산꼭대기가 가까울수록 매우 가파릅니다, 비탈지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어지간히 높은 정도의 산들은 정상에 다가갈수록 계단이 말도 못하게 가팔라 지던지, 아예 정상이 바위틈새에 있어서 튼튼한 로프줄을 잡고 기어 오르는 상황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그 비탈진 곳에서도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살고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 인생과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오랜 시간을 말이죠. 산 정상은 아래보다 기온의 변덕도 심하고 바람도 많이 불고... 날씨와 조건이 많이 좋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자라가고 살아갑니다. 매우 비탈진 바위 틈새에, 어디 바람이 불어 조금이라도 흙이 날아와 표면에 조금 덮여있는 상황일 지라도 거기 뿌리를 내리고 자랍니다. 산꼭대기 비탈이라 바로 자랄 수 없어서 비탈진 바위를 따라 삐딱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자라갑니다.
그것이 참 신기합니다. 가파르고 비탈진 곳, 흙이 거의 없는 꽤나 나쁜 조건이지만 또 거기에 맞춰서 살아가는 모습에서 생명의 강인함을 봅니다. 나무는 자기가 선 자리를 타박하지 않는다고 누군가 말했는데 과연 그렇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불리한 곳, 산 정상 근처 비탈진 곳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랄까, 살아갈까에 집중하는 것만 같습니다.
산비탈을 마주하고 자라가는 나무와 같은 삶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왜 이런 상황이 주어졌는지를 탓하고 고민할 때가 아닙니다. 가파르고 흙이 거의 없지만 이 바위틈에서 어떻게 뿌리내리고 살아갈까? 에 집중할 때입니다. 놀라운 것은 순전히 깎아지른 바위만 있을 것 같은 산꼭대기 그 정상에도 나무도 있고 꽃도 피고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생명은 그 힘이 놀랍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놀라운 생명력과 예수 믿는 믿음, 그분과 함께 동행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더 든든하고 아름다운 인생의 나무를 키워내시길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십니다. 그러므로 용기를 내십시오, 다시 한번 믿음의 뿌리를 여러분의 주어진 인생 토양에 내려보세요.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발하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