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을 나온지 3개월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 도착합니다. 그곳은 그들을 구원하신 조상의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애굽 땅에서 불러낸 이들을 만나시기 위해 친히 시내산 꼭대기에 강림하십니다. 산꼭대기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빽빽한 구름과 불과 연기, 그리고 나팔소리가 가득합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하신대로 자신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준비하면서 두 가지가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만날 때 그에 걸맞는 준비와 헌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스스로를 성결케 해야 합니다. 그러기위해 옷을 빨고(19:10), 여인을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다(15절). 시내산이 있는 곳은 시내광야입니다. 마실 물도 부족한 곳인데 옷을 빨아 입어야 합니다. 우리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할 수 있고, 편안히 세탁기도 돌릴 수 있겠지만 그날 시내산 광야에서 빨래할 물이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많은 주의와 힘을 기울여야만 자기 옷을 빨래 할 수 있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시내산을 오르고 또 내리는 것을 반복합니다. 19장에만 최소 두 번 시내산을 올라가고 내려옵니다. 올라가서 하나님을 시내산 꼭대기에서 뵈옵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려와서 백성들에게 전합니다. 시내산은 높이가 약 2200m조금 더 되는 높은 산입니다. 그런 높은 산을 80세 고령의 모세가 올라가고 내려가고를 반복합니다. 얼마나 힘이 들고 어렵겠습니까? 하나님은 꼭 산꼭대기에서만 말씀하실수 있기 때문입니까? 하나님을 만나려면 높이 올라가야만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서든지 임재하시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로 하여금 그 높은 시내산을 오르고 내리고 하도록 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뵙는 것은 인간 편에서 그만한 헌신을 드려야만 하는 것,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뵈옵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드리기 위해 스스로를 성결케 하고, 높은 산을 오르고 내리고 또 오르고 또 내리는 헌신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숨이 차오르는 것과 같은 수고와 헌신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만나주시고 말씀하시겠다 하셨어도 우리 편에서의 헌신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기 위해 어떤 헌신을 하고 있습니까? 적어도 시내산과 같은 높은 산을 오르고 또 내리는 수고에 준하는 헌신이 있어야 함을 기억하세요.
두 번째, 산기슭에 경계를 정하셔서 백성 중 누구도 함부로 하나님께 가까이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산에 오르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은 우리 마음대로, 내가 정하고 편한 시간과 방법대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경계를 세우신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경계를 통해 백성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조심하도록 하기 위함이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영역을 지키는 파수꾼, 경계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날 시내산에는 분명한 경계가 그어져 있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침범하지 못하고 나타내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우리가 고백하는 것은 이 세상 역시 하나님의 세상이며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곳이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상이지만 세상의 모든 곳이 다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도리어 불경하고 불의한 것들이 참 많은 곳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경계의 역할을 교회와 성도들은 부여받았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하나님 사이의 거룩한 경계선이 되어서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드러내야 합니다. 또한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이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스스로 성결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세상에 비추는 곳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스스로 성결케 하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며 거룩과 영광을 지켜내는 경계선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세상의 경계를 살아가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