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장과 2장을 보며 가장 끔찍한 부분을 고르라면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욥을 두 번이나 참소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욥1:9)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욥2:5)
사탄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욥이 당하는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길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욥 사이가 끝장나길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에 대해 인정하시는 하나님 앞에 욥을 두 번이나 고발합니다. 그런데 참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하나님께서 사탄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다 아시고도 그의 고발을 두 번 씩이나 용인하시고 사탄으로 하여금 욥을 시험해 보도록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욥이 사탄을 통해 받게 된 첫 번째 시험(모든 재산과 가축과 종들과 열명의 자녀들을 하루아침에 다 잃게 되는)을 받고서도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2) 하여서 여전히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지켜냈다면 두 번째 시험인 그의 몸을 직접 상하게 하는 고난은 허락하지 않으셨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면전에서 욥을 두 번씩이나 참소를 하고 그를 시험하여 오히려 죽음을 갈망할만큼 고통스럽게 한다면 다른 믿는 이들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토록 인정하고 칭찬하시던 욥도 죽고 싶은 고난에 들게 하셨는데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지금도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믿는 이들을 참소하고 고발하고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를 죽음에 이르도록 시험하지는 않을까....
그러나 이러한 염려는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욥이 받은 고난은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극단적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후에 우리를 대신하여 죄와 사망의 고난의 잔을 마시게 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예표하는 성격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죄와 고난의 잔을 십자가에서 마시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참소와 정죄를 당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롬 8:1). 주님이 모든 정죄를 다 당하시고 믿는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의롭다 칭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계시록 12장 9절, 10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 형제들을 밤낮 참소하던 자가 땅으로 쫓겨났다”고 말씀합니다. 사탄은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비난할 수도, 고소할수도 없습니다, 이 땅으로 내쫓긴 마귀는 우리를 위협할 수는 있으나 그 위협이 우리의 생명을 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담대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혹여 사탄이 우리를 참소할까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사탄으로 하여금 욥을 시험케 하셨던 것처럼 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승리하셨고, 마귀는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좌정하셔서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을 축복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성도는 이러한 믿음과 담대한 선포를 따라 오늘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