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신 예수님은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며 기도하십니다. 사십일의 금식 기간 후 가장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연약해져 있을 때 시험하는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라 되게 하라”(3절),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6절)마귀의 시험은 가장 연약해져 있을 때, 가장 연약한 육신에 필요한 것을 채우라는 것으로 찾아옵니다. 사십일 금식 후 예수님에게는 무엇보다도 먹을 음식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제 능력으로 채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먹을 것, 육체를 위해 필요한 것을 먼저 채우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4절)는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십니다. 떡이 가장 절실할 때도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먼저임을 말하십니다, 떡보다는 하나님 말씀이 먼저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무너진 경제 속에서 우리는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한 덩이 떡에 믿음을 팔아버릴 수는 없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인생의 전부, 우리 믿음의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행합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먹는 것 때문에, 마시고 입는 것 때문에 한달 한달 공과금과 월세, 대출 이자 때문에 갖은 압박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주님이 그저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기만을 간구합니다. 마귀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000해라, 빵을 만들든지,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지더라도 다치지 않고 멀쩡할 능력을 보이라”고 시험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임을 능력으로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됨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된 것은 능력을 보여서, 반드시 특정한 어떤 일을 하거나, 특정 코스를 통과해야만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은 증명의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부름 받았기에 아들이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자녀인 것입니다. 거기에는 어떤 조건도, 증명할 능력도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가 빠지기 쉬운 시험이 여기에 있습니다. 목회자로 부름 받았기에 반드시 교회를 부흥시키고 카리스마적인 능력을 보여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저같은 목사는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을 살면서 세상 사람들보다 적어도 한 발 이상 앞서고 잘 되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 같고 말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꼭 대단한 능력을 보임으로 증명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가 목회자로, 그분의 성도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것은 꼭 우리 손으로 대단한 일을 해내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아들로 증명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제가 증명되는 것은 오직 그분의 아들로, 그분의 종으로 그분의 자녀로 살고 수고하면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증명합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순종할 때 증명합니다, 주신 소명을 따라 수고하며 헌신함으로 증명합니다.하나님은 우리에게 대단한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나의 능력과 선함을 드러내고 그로 인해 “내가 하나님의 택한 이만한 사람이다” 라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부담은 이제 내려놓아도 좋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거룩한 신앙에 포장된 마귀가 주는 헛된 야망, 거룩함을 가장한 정욕일지도 모릅니다. 그저 부르심대로 살아가길,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시는 도구가 되고 통로가 되기만을 소망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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