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인정하신 아브라함의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이다.
아브라함은 이 믿음을 그의 나이 백세에 도달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나이가 많이 들게 되면 저절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은 젊어서는 도달하기에 여전히 멀리 있는, 분명 나이 듦이 있어야만 도달 할 수 있는 믿음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 이는 또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에 대한 다른 표현이다. 자신의 능력이 다하고 나서야 진짜 믿음이다, 생명이 다한 것 같고, 능력이 다한 것 같고, 아름다움과 건강이 다한 것 같을 때에서야 비로소 믿음은 선명해 진다. 믿음의 자기부인적인 측면이다.
젊을 때는 이 자기부인이 되지 않는다. 아직 인생의 가능성을 보기 때문이다, 스스로 할 수 있다 여기기 때문이다. 명심하라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다만 주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들이다.
나이가 들고, 인생의 세월이 흐른다는 것에 대해 이제는 새로운 소망이 생긴다. 세월이 흘러 내 나이도 백세나 되었을 때, 그때에는 내겐 아무런 힘도 없고 지식도 다하고, 아름다움도 다할 때이지만 바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에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더이상 나이 들어가는 것이 두려운 일이 아니다, 바랄수 없는 중에 주님을 바람으로 더욱 그분께 가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믿음으로 돌리는 것이다(20절). 내 몸이 죽은 것 같은 상태가 되어서 더 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는 순간을 곧 만날 것이다. 나는 그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다, 그 날이 또한 내 생애에서 가장 길고도 복된 순간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