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2편과 23편은 완전히 대조적인 기도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시편22: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23:1>
연달아 나오는 두 개의 시편, 그리고 두 시편 모두 다윗이라는 사람의 기도인데 한편에서는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며 하나님이 완전히 계시지 않은 절망을 외치고 또 다른 시편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하며 하나님 때문에 가장 행복한 심정을 밝은 톤으로 노래합니다.
왜 이토록 완전히 상반된 상태의 고백이 바로 앞뒤로 붙어서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시편 22편을 절망에 차 소리치는 그 사람도 시편 23편을 하나님으로 인해 행복에 겨워 아무 부족함 없다고 즐거워하는 그 사람도 동일한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어제는 절망에 차 하나님 도대체 나한테 왜이러십니까? 왜 도와주시지 않습니까? 혹시 계시지 않은 것은 아니지요? 라고 했다가, 그 다음날에는 하나님이 제 목자라서 너무 행복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환경에 따라, 제 믿음에 따라, 제 감정과 심리에 따라 어제와 오늘이 너무나도 다를 수 있는 존재, 그래서 자신에게는 도무지 신뢰할만 것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22편을 들으시는 하나님도, 23편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도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어느날은 나를 버리신 것 같은 하나님, 또 어떤 날은 내 가장 좋은 목자이신 하나님.....
나는 하나님을 이렇듯 어느날은 절규하듯 원망할 수도 있고, 어느 날은 세상 내게 가장 좋은 분으로 대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야, 너 어제는 왜 나를 버렸냐고 막 따졌지? 근데 오늘은 뭐냐? 여호와가 나의 목자라 부족함이 없다고?...너 왜이리 왔다갔다 하냐?”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의 믿음과 삶이 이렇듯 22편과 23편의 자리를 왔다갔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변함없는 산과 같이 요동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다윗같은 사람은 하나님이 까닭없이 나를 버린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푸른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것 같은 형통하는 상황에서도 늘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반석과 같이 흔들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22편과 23편 사이를 하루에도 수십번씩 오고 가는 사람이지만 변함없으신 하나님을 향해 그 과정을 거치면서 단단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많이 흔들려도 괜찮습니다. 신앙의 변덕이 죽끓듯해도 좋아요, 하나님은 여전히 구원의 하나님, 나의 목자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