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조 바이든 당선인은 개인적으로 매우 불행한 가정사를 많이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72년 바이든 당선인이 최연소 상원의원에 선출되던 해, 사고로 아내와 딸 아이를 잃게 됩니다. 그 사고는 바이든 당선인에게 매우 큰 절망과 아픔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를 한꺼번에 잃은 슬픔에 힘들어하던 그가 한 신문의 실린 두 칸짜리 작은 카툰 만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 카툰은 두 칸으로 각 칸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었습니다. “Why me?”<왜 하필 나에게 이런일이...> 그리고 그 옆칸에는 “Why not?”(왜, 그게 어때서?) 였습니다. 인생이 하필 나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느가? 가 아니라 사실 인생에서 고통과 절망은 누구에게든지 찾아올 수 있는 것이라는 통찰은 바이든 당선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저는 누구에게나 어려움은 찾아올 수 있고, 그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는 이야기가 썩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인생의 고통과 죽음은 너무도 평범하고 흔한 것이지만 그 일이 내게 닥쳤을 때 Why not? 하며 원래 인생은 그런 것임을 수긍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성경은 고난에 대해 분명한 해석을 해주시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 고난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이며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는 것이며<살후 1:5>, 환난을 받는 성도에게는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임을<살후 1:6>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기 때문에, 주 예수의 강림하실 때 안식의 은혜와 영광을 허락해주시기 위해 이 땅의 삶 가운데 하나님은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참 감격스럽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인생의 고난에 대해 이렇듯 분명히 설명하며, 유익한 것으로 정의하는 가르침은 없습니다. 이제는 고난을 유익으로, 복으로 이해합니다, 바라봅니다. 견뎌내야만하는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안식이 우리에게 있음을 감사하며 여전히 분주하고, 여전히 아프지만 오늘을 살아갑니다.